기업고위임원(CEO)
기업고위임원은 기업을 대표하며, 사업체 경영의 능률과 경제성 제고, 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조사연구나 홍보, 판매 등을 계획하고 관리한다.
-이사회나 이와 유사한 운영기관 또는 법령에 의해 위임된 권한 하에 사업체의 전반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운영현황, 과거의 실적, 미래의 계획을 평가하여 사업계획을 결정한다.
-대외적으로 사업체를 대표하며, 고위 간부와 임원의 임명을 결정하고 예산 배정과 조직의 업무분장을 조정하고 승인한다.
-부서간의 활동을 조정하고 사업체 운영상의 문제점을 해결한다.
-이사회나 이와 유사한 운영기관 또는 법령에 의해 위임된 권한 하에 사업체의 전반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운영현황, 과거의 실적, 미래의 계획을 평가하여 사업계획을 결정한다.
-대외적으로 사업체를 대표하며, 고위 간부와 임원의 임명을 결정하고 예산 배정과 조직의 업무분장을 조정하고 승인한다.
-부서간의 활동을 조정하고 사업체 운영상의 문제점을 해결한다.
-의사결정능력과 판단력이 요구되며, 분석적인 사고와 정보 수집 능력, 협상능력이 있어야 한다.
-경영환경 및 기업운영전반에 대한 지식과 상황에 따라 외국어 구사 능력이 필요하다.
-조직 관리와 인력 관리에 대한 연륜 및 경험이 필요하고 여러 사람을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추어야 한다.
-진취형과 탐구형의 흥미를 가진 사람에게 적합하며, 리더십, 혁신, 책임감, 분석적 사고 등의 성격을 가진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기업의 소유자(대주주) 또는 그 일가 기업의 사원으로 입사하여 승진 ▶ 해당 분야 전문가로 인정받아 스카우트 중소업체의 경우 본인이 회사 창업
- 기업고위임원이 되기 위해서 특별히 요구되는 학력, 자격은 없으나 일반적으로 전문대학 및 대학교에서 경영학, 경제학을 전공하여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사업체의 성격에 따라 해당분야의 석사 또는 박사학위, 전문자격증이나 면허가 요구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해당 분야에 대한 충분한 실무경험과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 기업고위임원이 되는 방법은 일반적으로 기업체의 사원이나 관리자 급으로 입사하여 진급하거나, 정부기관이나 단체, 다른 사업체에서 활동 한 후 전직하는 경우가 있다.
■ 기업고위임원 되는 방법
- 기업고위임원을 위한 교육으로는 대학교, 관련 협회 등의 외부기관에서‘최고경영자과정(AMP: Advanced Management Program)’과 같은 교육프로그램이 있다. 대학교에서 운영하고 있는‘최고경영자과정’은 보통 6개월 과정의 프로그램이며, 공·사기업체의 회장, 사장 및 고위 임원, 정부 각 기관의 2급 이상 공무원, 각 군의 장성급 장교, 기타 주요 기관의 기관장급 등으로 지원 자격을 제한하기도 한다. 소정의 과정을 수료하면 해당 대학교 총장 명의의 이수증을 받는다. 또한 경력개발을 위해 해외 비즈니스, 경영 및 언어능력의 향상을 위해 외국의 경영학석사(MBA)과정, 특히 고위직과정을 이수해 학위를 취득하는 경우가 있다.
정규 교육과정
기업고위임원이 되기 위해서는 전문대학 이상의 학력이 필요하며 사업체의 성격에 따라 해당 분야의 석사 또는 박사학위가 요구되기도 한다.
기업고위임원을 위한 교육으로는 대학교, 관련 협회 등과의 외부기관에서 최고경영자과정(AMP : Advanced Management Program)과 같은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교에서 운영하고 있는 최고경영자과정(AMP : Advanced Management Program)은 교육기간이 보통 6개월 과정이며, 지원 자격으로 공·사기업체의 회장, 사장 및 고위 임원, 정부 각 기관의 2급 이상 공무원, 각 군의 장성급 장교, 기타 주요 기관의 기관장급 등으로 제한하기도 한다. 소정의 과정을 수료하면 해당 대학교 총장 명의의 이수증을 받는다.
핵심능력-대인관계능력, 언어능력, 수리논리력
유사직업-최고경영자
관련학과-경영학과, 경제학과, 산업공학과
관련자격-CIA(외국), 경영지도사(국가전문), 기술지도사(국가전문)
관련정보처-전국경제인연합회(http://www.fki.or.kr), 한국경영자총협회(www.kef.or.kr),
한국경제연구원(www.keri.org) 한국상장회사협의회( www.klca.or.kr)
관련학과-경영학과, 경제학과
사용하는 도구 및 프로그램-크리스탈볼, PC, 엑셀, 한글, 파워포인트, 노트북
향후 5년간 기업고위임원(CEO)의 고용은 현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IMF 이후 상당수 기업이 구조조정을 통해 관리직을 대폭 축소하였으나 최근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역량있는 기업 고위임원의 역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과거에는 임원의 역할이 해당분야의 관리자로 국한되었으나 요즘은 기업의 발전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가, 혁신가로서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하여 전문 경영인 제도가 도입되면서 전문가 영입이 활성화되고 있다. 하지만 기업고위임원(CEO)은 일자리가 매우 한정적이어서 양적으로 큰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본인이 창업하여 기업주가 되거나 소유자의 일가가 기업경영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 일자리 자체가 폐쇄적이고 제한적이다.
- 기업고위임원은 다른 직업에 비해 임금이 높고 복지가 잘 갖추어져서 보상 영역의 점수가 높게 나타났다.- 기업고위임원의 일자리창출 및 성장 수준이 제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취업경쟁이 심하기 때문에 일자리전망 영역의 점수는 매우 낮게 나타났다.- 고위임원은 기업을 대표하여 사업계획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 수준이 매우 높고 근무시간도 길기 때문에 근무여건 영역의 점수가 매우 낮게 나타났다.- 기업의 고위임원은 고위 간부와 임원의 임명을 결정하고 승인하는 등의 업무권한과 자율성 수준이 매우 높고 사회적으로도 높은 평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직업전문성 영역의 점수가 높게 나타났다.
IMF 이후 상당수 기업이 구조조정을 통해 관리직을 대폭 축소하였으나 최근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역량있는 기업 고위임원의 역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과거에는 임원의 역할이 해당분야의 관리자로 국한되었으나 요즘은 기업의 발전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가, 혁신가로서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하여 전문 경영인 제도가 도입되면서 전문가 영입이 활성화되고 있다. 하지만 기업고위임원(CEO)은 일자리가 매우 한정적이어서 양적으로 큰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본인이 창업하여 기업주가 되거나 소유자의 일가가 기업경영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 일자리 자체가 폐쇄적이고 제한적이다.
- 기업고위임원은 다른 직업에 비해 임금이 높고 복지가 잘 갖추어져서 보상 영역의 점수가 높게 나타났다.- 기업고위임원의 일자리창출 및 성장 수준이 제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취업경쟁이 심하기 때문에 일자리전망 영역의 점수는 매우 낮게 나타났다.- 고위임원은 기업을 대표하여 사업계획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 수준이 매우 높고 근무시간도 길기 때문에 근무여건 영역의 점수가 매우 낮게 나타났다.- 기업의 고위임원은 고위 간부와 임원의 임명을 결정하고 승인하는 등의 업무권한과 자율성 수준이 매우 높고 사회적으로도 높은 평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직업전문성 영역의 점수가 높게 나타났다.
입직 및 취업방법
기업고위임원(CEO)이 되기 위해서 특별히 요구되는 학력, 자격은 없으나 전문대학 이상의 학력 소지자가 대부분이다. 기업고위임원은 본인이 기업의 소유자(대주주) 또는 그 일가이거나 기업의 사원으로 채용되어 임원으로 승진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또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능력을 인정받아 스카우트 되는 경우도 있다. 중소업체의 경우에는 본인이 회사를 창업하여 최고경영자가 되기도 한다.
기업의 사원으로 입사한 경우, 기업고위임원이 되려면 실력은 기본이고 어디에서 일을 처음 시작했는지, 무슨 직책을 거쳤는지가 중요하기에, 기업고위임원이 되려면 여러 직책을 두루 거치며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기업고위임원이 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에 대한 충분한 실제 경험과 전문지식을 갖춰야 한다.
기업에 신입 사원이 입사 후 능력과 업적 평가에 따른 승진제도를 통해, 신입→대리→과장→차장→부장→임원(상무→전문→부사장→사장) 등의 승진과정을 거쳐 기업고위임원이 되며, 대졸신입이 임원까지 승진하는데 입사이후 평균 20년 이상 소요된다. 경력개발을 위해 해외 비즈니스, 경영 및 언어능력의 향상을 위해 외국의 경영학석사(MBA)과정 특히 고위직과정을 이수해 학위를 취득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보다 규모가 큰 기업체의 전문경영인으로 스카우트되기도 하고 국내기업에서 외국계 기업으로 옮기기도 한다. 이밖에 대학에 출강해 자신들의 전문경험과 지식을 강의하기도 한다.
고용현황
기업고위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2,900명이며, 이 가운데 임금근로자는 2,900명(100%)이다.
기업고위임원의 성비는 남자 90.3%, 여자 9.7%이며, 평균 연령은 53.1세이다. 전체적으로 평균 16.8년의 학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평균 계속 근로연수는 20.3년이다(자료: 2011-2012 Job Map).
기업고위임원의 월평균 수입은 1,089만원이다(자료: 2011-2012 Job Map).
지엘 어쏘시에이트 대표
직무소개
저는 전시관, 체험관 등을 설계 및 공사, 완성에 이르는 단계의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직업선택 동기
대학교 때부터 디자인을 전공하며 공간을 다루는 이 직업에 대해 생각을 해왔습니다
직업준비 및 경로
저는 대학과정으로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으로 삼성전자 디자인실에서 근무를 하다가 상품기획실에서 3년간 근무 후 오리콤이라는 광고회사로 옮겨 근무를 하였고 이 기간 동안 문제 해결 방법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렇게 약 10년 정도의 직장 생활 후에 현재의 회사를 운영하게 되었고 처음 4명의 인원에서 현재 70여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회사로 거듭나서 내년에 1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직업특성
일의 특성상 성과 및 결과물이 가시화됩니다. 그에 대한 관람객들의 좋은 평가를 들을 때 이 직업에 대한 보람을 느낍니다. 초기에는 사업체가 작아서 모든 소소한 일을 다 해야 했기에 야근도 많고 어려움이 컸지만 현재 회사가 커가면서 점차 일이 배분되어 나아지고 있습니다.
자기계발(필요한 업무수행능력, 재교육활동, 학습 등)
이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창의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창의성은 체험 및 경험을 바탕으로 생겨난다고 봅니다. 또한 문제 해결을 위한 효과적인 조합 능력이 필요합니다. 앞으로는 회사 운영을 위해서 개인의 능력을 키우기 보다는 좋은 인재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보면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관계를 잘 조율하는 역할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직업선택을 위한 조언
이 분야는 능력만 있다면 소자본만으로도 소규모 창업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업체가 평균 수명 10년을 넘지 못하는데 이 문제는 경영 마인드(mind)를 갖고 여러 팀과의 조화, 규합을 통해 풀어가야 합니다.
고졸신화 윤생진
불가능을 비웃으며 운명과 맞서 꿈을 이룬 고졸신화!
흑산도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윤생진. 고등학교를 마쳤을뿐인 그가 입사 16년만에 금호그룹의 상무까지 진급해 직장인들 사이에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의 성공신화를 들어보자.
주요경력
경력전 금호아시아나그룹 인재개발원 원장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본부 전무
<수상>석탑 산업훈장 수훈(수출 유공)
<수상>품질관리 대통령상 수상
<수상>품질 명장 대통령상 수상
<수상>한국 최우수 신지식인상 수상
<수상>품질경영 우수 대통령상 수상
<수상>품질유공 은탑산업 훈장
움직이는 아이디어 뱅크!
1만8천여 건의 아이디어를 제출하고 제안분야에서 기네스북에 오른 윤생진. 일에 미쳤다고 스스로 말하는 그에게 그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고정관념을 깨고 신화창조로!
인사파괴, 학력파괴, 남녀차별파괴, 파괴할 수 있는 망치를 든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그는 고졸출신으로 초고속 승진하여 학력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모든 근로자들에게 꿈과 비전을 주었다.
자신과의 엄격한 싸움꾼!
입사 이후 하루 4시간이상 잠을 자본 적이 없으며 10년 가까이 TV연속극을 한번도 본 일도 없다. 그는 항상 호주머니에 쪽지를 넣어 가지고 다니며 그때그때 생각난 것을 메모하는 메모광이다.
인터뷰 내용보기
고교때는 그냥 평범하기만 한 학생이었다고 들었는데 사회우등생이 되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런 변신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끊임없이 제가 하고 있는 일을 개선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냈기 때문이에요. 생산직 근무 시에는 하루 보통 7~8건. 매년 2천여 건씩 아이디어만 1만 8600건을 냈어요. 영광스럽게도 대통령표창 5회, 국제 특허 17개, 7번의 특진과 훈장 2회 수상했어요. 이런 아이디어들이 모여 지난 83년에는 타이어 완제품 가류기의 작업공정 개선방안을 내놓아 공전의 히트를 쳤어요. 당시 가류기는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100% 수입하고 있었는데 제가 공정 수순을 바꾸는 개선안을 사측에 제안해 타이어 한 개를 만드는 시간을 10초나 단축해 연간 2만개를 더 생산하는 효과를 낳았어요. 전체 투자비 12만원으로 연간 20억원 이상의 추가 생산효율을 거두게 된 셈이지요. 그 밖에 작은 것이라도 다른 사람들은 그냥 스쳐지나갈 일들도 제겐 아이디어가 됩니다. 구내식당에서 젓가락과 숟가락을 따로 반납할 것을 제안해, 설거지 시간을 단축했더니, 덕분에 30억원의 원가절감을 이뤘어요.
고졸 생산직 출신으로 16년 만에 금호그룹의 상무까지 진급해 직장인들 사이에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셨는데 본인은 성공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주위에선 이런 저를 보고 성공한 직장인이라 하지만 전 이것만이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성공이라는 것을 좀 다르게 생각해요. 좋은 학교를 나왔거나,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만이 성공의 잣대가 아니라 자신의 일을 통해 내 안에 숨어있는 나를 발견하고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하고 자기를 발견하는 것! 이것이 성공 아닐까요? 만약에 제가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고 좌절하거나 패배의식에 젖어 살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전 고정관념을 파괴하기 위해 끊임없는 도전정신으로 일에 몰두했고 창의력을 발휘하면서 점점 더 일에 흥미를 더해갔어요.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성공이 따라오더군요.
성공의 비결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특별히 성공철학이 있으십니까?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을 믿고 능력을 발견해야 해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실패를 하더라도 좌절할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만회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워야 합니다. 또 모험심, 문제의식, 실천능력을 통해 자신이 지닌 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어야 해요. 일단 자아를 발견하면 두려움이 없어지면서 자신감이 붙게 됩니다. 이때 바로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탄력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특히 직장인으로 성공하려면 우선 끊임없는 아이디어를 제안해야 해요. 전 입사 이후 하루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어요. 10년 가까이 TV연속극을 본 일도 없고요. 항상 호주머니에 쪽지를 넣어 가지고 다니며 그때그때 생각난 것을 메모하곤 합니다. 또 하나의 비결은 체력 관리입니다. 저는 요즘도 매일 한 시간씩 체력 단련에 투자해요. 반짝이는 아이디어도 건강할 때 떠오르기 때문이지요. 남들 같으면 은퇴를 바라보는 50대 중반인데도 에너지가 넘치게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답니다.
특별한 성공철학이라면 비슷한 맥락일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으로 지금하고 있는 일에 열정적으로 미쳐야 해요. 그 다음에는 자신감을 갖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도전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나는 할 수 있다.’ 라는 긍정의 힘이 밑바탕에 있었던 것 같아요. 천주교 신자인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신부님의 사제관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신부님은 7년 동안 제게 항상 잘한다, 괜찮다, 가능하다는 칭찬을 굉장히 많이 해주셨어요. 농구를 해서 슛 하나 들어가도 전교 1등을 한 것만큼 좋아해 주셨어요. 이런 격려가 긍정의 힘을 발휘해 제가 돈이 없어도, 공부를 못해도, 가난했어도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머리와 가슴에 깊이 새길 수 있게 만들었어요. 그런 긍정의 힘이 있었기에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었어요.
수많은 아이디어를 내면서 채택이 안 되거나 무시당했을 때는 없으셨는지요?
아이디어를 내서 발명을 하면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에요. 실패가 70~80%에 달해요. 보통 사람들은 거기에서 다 좌절하지만 전 `야구이론`을 가지고 대처해요. 야구에선 3할 대 타자라면 최고의 타자예요. 그래서 저는 제 아이디어를 내서 3할 대만 성공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들은 70%의 불채택된 것을 생각하지만 전 30%의 채택된 아이디어만 생각해요. 저는 보통 2할대 타자입니다. `20%나 채택되었구나 참 기분좋다`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3할 대 타자가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요.
성공가도를 달리고 계시지만 한 번쯤은 좌절도 맛보고 힘든 시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지금까지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도 많았지요. 입사 후 제안했던 아이디어가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고 다양한 문제 제기와 아이디어들이 상황에 따라서는 불평불만 많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수년간 기계를 똑같은 방법으로 사용하는 사람을 개선해 원가를 절감하고 생산성을 올린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초고속 승진하는 저를 보고 모함하고 시기 질투하는 시선이었어요. 언젠가 진실은 밝혀지리라 생각하고 오뚝이처럼 쓰러질 때마다 힘을 내 일어섰어요.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보니까 주위에서도 저의 진심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더군요. 지금도 저는 매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어요.
학창시절의 꿈은 무엇이었습니까?
어릴 땐 운동을 무척이나 좋아해 국가대표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나서 사업을 하고 싶었어요. 전 무엇을 하든 항상 제 맘속에는 무조건 성공할거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어요. 국가대표선수가 되든 사업을 하든 직장생활을 하든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희망만은 학창 시절이나 지금이나 저의 맘 한곳에 꺼지지 않고 있어요.
존경하고 닮고 싶은 롤모델이 있으신지요?
여러분들이 떠오릅니다. 사람이 성장하고 나이를 먹을수록 롤모델도 차츰 변하는 것 같아요. 우선 김우중 회장님의 성공에 대한 집념과 정주영 회장님의 창의력을 존경해요. 그리고 인재를 학벌이 아닌 능력으로 평가하신 금호그룹 박성룡 회장님의 인재경영방식을 본받고 싶은 부분이에요. 특히 박 회장님은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생산직 근로자인 저의 열정과 성심을 보시고 2계급 특진이란 전무후무한 인사 단행으로 제 능력을 활짝 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신 분이기도 해요. 나를 믿어주고 인정해주는 분들이 계셨기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재의 삶에 만족하십니까? 앞으로 어떤 꿈을 꿈꾸시고 계신지?
제 인생을 축구시합으로 본다면 전반전 밖에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아직 화려한 후반전도 있고, 연장전까지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더 크고 원대한 꿈과 야망, 목표를 향해서 끝없이 도전할 것이에요. 그것은 제가 사는 이유이기도 해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원 박사과정도 공부하고 있고 전문서적도 많이 읽고 있어요. 20~30대 젊은 친구들만큼 공부하고 노력하려고 해요. 앞으로는 녹색성장 신재생 에너지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고 사업을 구상 중이에요.
청소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떤 역경에도 뜻이 간절하면 길이 열려요. 성공은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저는 흑산도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몹시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어요. 얼굴엔 마른버짐이 그칠 날이 없을 정도였어요. 그 당시 아이큐가 139라서 나쁘지 않은 머리를 가진 줄은 알았지만 아버님이 거듭된 사업실패로 화병으로 쓰러지시는 바람에 학비는 고사하고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야만 했어요. 그러나 가난은 고난이라기보다는 어떻게든 헤쳐 나가야 할 장애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상황에서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반드시 성공할거예요. 성공하도록 주어진 환경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세상을 향해 꿈을 가지고 맘껏 도전해 보세요. 그럼 세상의 주인이 될 것이에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아직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이 비전과 도전을 가지고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학벌위주의 사회풍조가 만연하기 때문이에요. 그런 환경에서는 제2의 빌게이츠가 나올 수 없어요. 어느 한 분야에 특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학벌을 떠나 능력으로 존중받아야 해요. 어느 학교 나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잘하느냐가 중요한 사회 말이에요. 이웃 독일의 경우에는 마이스터란 제도가 있어 기능인들을 우대하기 때문에 세계적인 기술 인력들이 배출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한문으로 자기 이름을 못 쓴다고 하더라도 이 사람이 세계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기술만 있다면 일인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청년기업가편
"남과 다른 생각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다."
이시원(시원스쿨대표)
창업하게 된 계기?
시장에서 어떤 비즈니스를 시작하려면 가장먼저 해야 되는 것이 정말 수요가 많은 곳인가 라는 부분이에요. 사실 많은 분들이 영어를 공부하지만 기초가 없는 것들을 제가 많이 보게 됐어요 그래서 그 부분을 채워줄 수 있으면 이 비즈니스가 성공할 수 있겠다 싶어서 창업하게되었습니다.창업 준비 시 힘들었던 경험과 극복기? 한명을 처음에 뽑을 때 그 한 명이 참 안 뽑혔어요. 왜냐면 사장 혼자 있는 회사에 누가 오고 싶겠어요. 이제 회사를 키워가면서 사람들이 이제 점점 저희가 57명이 됐는데 그 인원들이 커가면서 복합스러운 그런 인간관계가 제일 힘든 것 같습니다. 상황상의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 상황을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서경민(바이미닷컴대표)
남다른 시작은 어디에서?
우선 사업에 대해서 아이디어를 내는 부분들은 책을 통해서 가장 많이 벤치마킹을 하는 것 같아요. 다른 기업이 했던 사례라든지 경영기법이라든지 다른 기업에서 겪었던 사례들 같은 것들을 책을 통해서 많이 접하게 되고 여러 방송이나 아니면 그런 경험들을 통해서 겪다 보면 이제 제가 거기에 반추해서 우리 기업에서는 어떤 사업 아이템을 가지고 어떤 전략을 쓸 수 있을지 그런 것들을 고민해 볼 수 있는 것 같고요. 또 저는 일찍 창업을 해서 사실은 선배 창업자 분들이 많이 도움을 주시는 편이에요. 그래서 그런 분들이 해주시는 말씀들이 사실 책에서 얻지 못하는 현장감 있는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노하우를 통해서 배우기도 하고 있습니다.
김용태(SOCIAL MC 대표)
소셜 MC는 어떤 회사?
소 셜 미디어에 관련된 부분으로 기업들의 일을 대행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상의 마케팅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온라인 상에서 현재 많이 사용되고 있는 채널들이 있습니다. 블로그나 트위터나 페이스북, 그리고 유투브 등 온라인 상에서 소통할 수 있는 채널들이 있는데요. 이런 채널들을 활용해서 기업들의 일을 대행하고 있습니다.창업 후 가장 힘들었던 기억과 극복은 어떻게?가장 어려운 부분이 사람에 대한 관리 부분인 것 같습니다. 회사의 방향과 동일하게 움직이고 뭉쳐 있고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게 지금 매달 겪는 어려움 인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제가 다른 사람 입장에서 보는 시도를 해보고 그게 한 번 두 번 했을 때 다시 안될 경우에는 외부, 내부에서 조언을 받기 보다는 외부에 이제 좀 나이 많으신 어른 분들에게서 조언을 받게 됩니다. 멘토라고 할 수 있는 이제 같은 업종에서 이런 경험을 30년 정도 해보신 분. 그래도 해결이 안 되는 경우가 사실 많죠. 그런 때에는 내부에 있는 구성원들에게도 조언을 받기도 합니다.
염지홍(패션디자인대표)
남들과 다른 아이디어 발상법?
만약 자기의 아이디어가 있으면 이런 것들을 한 번 더 상상을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어떤 아이디어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판매가 돼서 어떤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그럼 그 제품이 어떤 환경적 영향을 미칠 것인지 까지도 생각을 해봐야 하거든요. 그래서 고려를 해봐야 할 것들이 옛날보다 훨씬 더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그런걸 배우기 위해서는 너무나 쉬운 것들만 한다기보다 직접 사람을 만나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도 사람을 상대할 수 있는 일, 결국 사람 안에서 이런 아이디어들이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것과 함께 지식과 경험을 쌓는 것과 병행을 해야만 여러 가지 좋은 사업 기회도 열릴 것이라고 생각 하거든요. 그리고 뭐 사업기회를 얻기 위해서도 또 다른 새로운 사람들, 좋은 사람들을 만날 필요가 있는 것이고요. 그리고 그들과 또 새로운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열린 마음을 가진다면 청년 창업도 충분히 도전해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동헌(마이크임팩트 대표)
창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
제가 없던 걸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인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무언가를 보여줘야만 인지를 하기 때문에 그런 점이 힘들었죠. 제가 생각하고 꿈꾸는 모습을 전달하는 게 힘들었어요.초기 창업 자금과 현재 매출?처음에 시작할 때는 친구들끼리 같이 모여서 했기 때문에 프로젝트 비용이 든 것이었고 시작할 때는 사실 사무실도 무엇도 아무것도 없었어요. 돈도 들게 아무것도 없었고 커피숍에 모여서 시작을 했던 거죠. 사실 창업 자금은 법인 설립비용 정도, 주주 납입금 이 정도만 필요하지 나중에 그런 돈이 필요해서 돈이 없어서 못 만든다 이런 이야기 같은 경우는 사실 요즘 시대에는 잘 안 맞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매출 같은 경우에는 정확하게 밝히기는 어렵지만 지금 한 열 다섯 명에서 스무 명 정도의 친구들이 같이 일하고 있고, 뭐 이제 2010년 기준으로 봤을 때는 몇 십억 단위 이 정도로 매출을 많이 올리죠.
성공을 부르는 발상의 전환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기업가편
"이윤보다 공공의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들."
창의적 진로개발 : 직업창조와 앙터프레너십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진(진미석,손유미,허정희,김소연)
1. 강소영(사람사랑나눔학교 교장)
서울 미아동에 있는 아주 특별한 카페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발달장애 청소년입니다. 장애인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일터. 그 시작엔 아삭의 남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인터뷰]
우선 가장 힘들었던 건 사회에서 장애에 대한 편견, 선입견, 그리고 그 현장에 있는 부모들조차도 할 수 없고, 그냥 단순한 업무 이 정도만 하면 좋겠다는 한계성을 긋고 저희 쪽으로 온다는 것이 저희들은 가장 답답하고 많이 어려웠던 부분이고요.
사회적 기업가로서 뿌듯함을 느낄 때?
우리 친구들이 스스로 뭔가를 해서 자기네 스스로가 돈을 벌었다고 느껴서 기뻤을 때,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이 친구들에게 처음 급여를 줬을 때 이런 것들. 그리고 이 친구들에게 급여를 주고 또 그것에 대해서 쓸 수 있도록, 부모님에게 양말이라도 하나 사게끔 교육을 하고 그런 부분들 하나하고, 그 다음에 창업가게는 아니지만 졸업 후에 채용된 애들이 있거든요. 다른 데로 취업을 한 친구들이 밤늦게 떡볶이, 순대 사 들고 선생님 찾아올 때, 스승의 날 찾아올 때, 뭐 이럴 때 가장 보람스러운 것 같아요.
2. 강성태(공부의 신 대표)
대학생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저소득층 학생들의 공부를 돕는 21세기형 공부방 <공부의 신>
[인터뷰]
공부의 신 회사 소개?
멘토링을 진짜 대한민국 전국으로 확대시켜보자는 그런 꿈을 갖게 됐어요. 그런 꿈을 갖고 저희끼리 고민을 하다가 그 꿈을 이루어줄 수 잇는 가장 적합한 형태가 사회적 기업이라는 그런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지금 2008년 말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젊은 피, 강성태 대표가 만든 사회적 기업입니다
[인터뷰]
사회적 기업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
`인터넷 사이트 운영하는 공신닷컴을 제대로 운영을 하려면 기업의 형태를 가야 한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렇다고 저희가 어떤 처음에 취지나 추구했던 바가 일반적인 사교육 업체는 또 아니었거든요. `우리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형태가 사회적 기업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3. 노리단
문화예술 분야의 대표적인 사회적 기업 <노리단>
2004년 청소년 문화예술 창업프로젝트로 시작되었습니다
생태주의 공연부터 직업체험 놀이터 공공디자인 등 청년사업과 지역을 거점으로 한 커뮤니티 사업
[일본관람객 인터뷰]
노리단과 같이 고용하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은 아직 없기 때문에 노리단, 아니 한국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 박미현(터치포굿 대표)
현수막과 광고판... 쓰고나면 버려지는 물건들
쓰레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회적 기업, 터치 포굿
[인터뷰]
터치포굿 창업 계기?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서 관심도 가지고 있었고 토론을 한다든가 하는 활동들에 참여하고 있었는데요, `내가 하는 일들이 사회에 좀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 라는데 뜻을 모으게 돼서 창업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남다른 발상을 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환경문제에 관심 있는 친구가 있어서 뭔가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재료를 가지고 쓸모 있는 것들을 만들어 보자 까지 동의가 됐어요. 그러다가 주변을 살펴보게 됐는데 현수막이 너무 많은 거예요. 모두가 알고 있는 소재로 시작을 해보자 라고 해서 처음에 현수막을 선택을 했고요. 현수막 같은 경우는 워낙 재활용을 하는 곳도 많이 있었고 워낙 많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는데 두 번째 광고판을 찾아냈던 계기가 우연히 이렇게 만져보게 됐는데 굉장히 부들부들한 소재로 되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계기를 통해서 우리가 항상 지나다니던 건데 내가 진작 한 번 만져봤으면 더 일찍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녀가 있어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집니다
5. 변형석(트래블러스 대표)
환경을 생각하는 에코투어
<트래블러스맵>은 소비적인 여행이 아니라 공정한 여행, 지속 가능한 여행을 만들어가는 사회적 기업입니다.
[인터뷰]
창업 계기?
사회가 같이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살 수 있는 그런 세상들을 꿈꾸면서 살아왔던 게 있고요. `내가 돈을 버는 그 목적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식이면 좋겠다` 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최근에 사회적 기업이라는 게 어떤 경제 주체로 등장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저도 좀 거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고요.
사회적 기업가 정신의 중요 요소?
사회를 어떻게 바꿔나갈지에 대한 새로운 어떤 아이디어들이죠.. 그리고 이런 것이 좀 창의성인 것 같아요. 굉장히 좀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그리고 사회에 대한 민감한 시선들과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는 그런 부분이 아마 사회적 기업가의 중요한 덕목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한민국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회적 기업가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직무소개
저는 전시관, 체험관 등을 설계 및 공사, 완성에 이르는 단계의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직업선택 동기
대학교 때부터 디자인을 전공하며 공간을 다루는 이 직업에 대해 생각을 해왔습니다
직업준비 및 경로
저는 대학과정으로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으로 삼성전자 디자인실에서 근무를 하다가 상품기획실에서 3년간 근무 후 오리콤이라는 광고회사로 옮겨 근무를 하였고 이 기간 동안 문제 해결 방법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렇게 약 10년 정도의 직장 생활 후에 현재의 회사를 운영하게 되었고 처음 4명의 인원에서 현재 70여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회사로 거듭나서 내년에 1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직업특성
일의 특성상 성과 및 결과물이 가시화됩니다. 그에 대한 관람객들의 좋은 평가를 들을 때 이 직업에 대한 보람을 느낍니다. 초기에는 사업체가 작아서 모든 소소한 일을 다 해야 했기에 야근도 많고 어려움이 컸지만 현재 회사가 커가면서 점차 일이 배분되어 나아지고 있습니다.
자기계발(필요한 업무수행능력, 재교육활동, 학습 등)
이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창의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창의성은 체험 및 경험을 바탕으로 생겨난다고 봅니다. 또한 문제 해결을 위한 효과적인 조합 능력이 필요합니다. 앞으로는 회사 운영을 위해서 개인의 능력을 키우기 보다는 좋은 인재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보면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관계를 잘 조율하는 역할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직업선택을 위한 조언
이 분야는 능력만 있다면 소자본만으로도 소규모 창업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업체가 평균 수명 10년을 넘지 못하는데 이 문제는 경영 마인드(mind)를 갖고 여러 팀과의 조화, 규합을 통해 풀어가야 합니다.
고졸신화 윤생진
불가능을 비웃으며 운명과 맞서 꿈을 이룬 고졸신화!
흑산도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윤생진. 고등학교를 마쳤을뿐인 그가 입사 16년만에 금호그룹의 상무까지 진급해 직장인들 사이에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의 성공신화를 들어보자.
주요경력
경력전 금호아시아나그룹 인재개발원 원장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본부 전무
<수상>석탑 산업훈장 수훈(수출 유공)
<수상>품질관리 대통령상 수상
<수상>품질 명장 대통령상 수상
<수상>한국 최우수 신지식인상 수상
<수상>품질경영 우수 대통령상 수상
<수상>품질유공 은탑산업 훈장
움직이는 아이디어 뱅크!
1만8천여 건의 아이디어를 제출하고 제안분야에서 기네스북에 오른 윤생진. 일에 미쳤다고 스스로 말하는 그에게 그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고정관념을 깨고 신화창조로!
인사파괴, 학력파괴, 남녀차별파괴, 파괴할 수 있는 망치를 든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그는 고졸출신으로 초고속 승진하여 학력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모든 근로자들에게 꿈과 비전을 주었다.
자신과의 엄격한 싸움꾼!
입사 이후 하루 4시간이상 잠을 자본 적이 없으며 10년 가까이 TV연속극을 한번도 본 일도 없다. 그는 항상 호주머니에 쪽지를 넣어 가지고 다니며 그때그때 생각난 것을 메모하는 메모광이다.
인터뷰 내용보기
고교때는 그냥 평범하기만 한 학생이었다고 들었는데 사회우등생이 되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런 변신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끊임없이 제가 하고 있는 일을 개선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냈기 때문이에요. 생산직 근무 시에는 하루 보통 7~8건. 매년 2천여 건씩 아이디어만 1만 8600건을 냈어요. 영광스럽게도 대통령표창 5회, 국제 특허 17개, 7번의 특진과 훈장 2회 수상했어요. 이런 아이디어들이 모여 지난 83년에는 타이어 완제품 가류기의 작업공정 개선방안을 내놓아 공전의 히트를 쳤어요. 당시 가류기는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100% 수입하고 있었는데 제가 공정 수순을 바꾸는 개선안을 사측에 제안해 타이어 한 개를 만드는 시간을 10초나 단축해 연간 2만개를 더 생산하는 효과를 낳았어요. 전체 투자비 12만원으로 연간 20억원 이상의 추가 생산효율을 거두게 된 셈이지요. 그 밖에 작은 것이라도 다른 사람들은 그냥 스쳐지나갈 일들도 제겐 아이디어가 됩니다. 구내식당에서 젓가락과 숟가락을 따로 반납할 것을 제안해, 설거지 시간을 단축했더니, 덕분에 30억원의 원가절감을 이뤘어요.
고졸 생산직 출신으로 16년 만에 금호그룹의 상무까지 진급해 직장인들 사이에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셨는데 본인은 성공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주위에선 이런 저를 보고 성공한 직장인이라 하지만 전 이것만이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성공이라는 것을 좀 다르게 생각해요. 좋은 학교를 나왔거나,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만이 성공의 잣대가 아니라 자신의 일을 통해 내 안에 숨어있는 나를 발견하고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하고 자기를 발견하는 것! 이것이 성공 아닐까요? 만약에 제가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고 좌절하거나 패배의식에 젖어 살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전 고정관념을 파괴하기 위해 끊임없는 도전정신으로 일에 몰두했고 창의력을 발휘하면서 점점 더 일에 흥미를 더해갔어요.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성공이 따라오더군요.
성공의 비결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특별히 성공철학이 있으십니까?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을 믿고 능력을 발견해야 해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실패를 하더라도 좌절할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만회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워야 합니다. 또 모험심, 문제의식, 실천능력을 통해 자신이 지닌 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어야 해요. 일단 자아를 발견하면 두려움이 없어지면서 자신감이 붙게 됩니다. 이때 바로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탄력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특히 직장인으로 성공하려면 우선 끊임없는 아이디어를 제안해야 해요. 전 입사 이후 하루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어요. 10년 가까이 TV연속극을 본 일도 없고요. 항상 호주머니에 쪽지를 넣어 가지고 다니며 그때그때 생각난 것을 메모하곤 합니다. 또 하나의 비결은 체력 관리입니다. 저는 요즘도 매일 한 시간씩 체력 단련에 투자해요. 반짝이는 아이디어도 건강할 때 떠오르기 때문이지요. 남들 같으면 은퇴를 바라보는 50대 중반인데도 에너지가 넘치게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답니다.
특별한 성공철학이라면 비슷한 맥락일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으로 지금하고 있는 일에 열정적으로 미쳐야 해요. 그 다음에는 자신감을 갖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도전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나는 할 수 있다.’ 라는 긍정의 힘이 밑바탕에 있었던 것 같아요. 천주교 신자인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신부님의 사제관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신부님은 7년 동안 제게 항상 잘한다, 괜찮다, 가능하다는 칭찬을 굉장히 많이 해주셨어요. 농구를 해서 슛 하나 들어가도 전교 1등을 한 것만큼 좋아해 주셨어요. 이런 격려가 긍정의 힘을 발휘해 제가 돈이 없어도, 공부를 못해도, 가난했어도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머리와 가슴에 깊이 새길 수 있게 만들었어요. 그런 긍정의 힘이 있었기에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었어요.
수많은 아이디어를 내면서 채택이 안 되거나 무시당했을 때는 없으셨는지요?
아이디어를 내서 발명을 하면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에요. 실패가 70~80%에 달해요. 보통 사람들은 거기에서 다 좌절하지만 전 `야구이론`을 가지고 대처해요. 야구에선 3할 대 타자라면 최고의 타자예요. 그래서 저는 제 아이디어를 내서 3할 대만 성공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들은 70%의 불채택된 것을 생각하지만 전 30%의 채택된 아이디어만 생각해요. 저는 보통 2할대 타자입니다. `20%나 채택되었구나 참 기분좋다`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3할 대 타자가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요.
성공가도를 달리고 계시지만 한 번쯤은 좌절도 맛보고 힘든 시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지금까지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도 많았지요. 입사 후 제안했던 아이디어가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고 다양한 문제 제기와 아이디어들이 상황에 따라서는 불평불만 많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수년간 기계를 똑같은 방법으로 사용하는 사람을 개선해 원가를 절감하고 생산성을 올린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초고속 승진하는 저를 보고 모함하고 시기 질투하는 시선이었어요. 언젠가 진실은 밝혀지리라 생각하고 오뚝이처럼 쓰러질 때마다 힘을 내 일어섰어요.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보니까 주위에서도 저의 진심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더군요. 지금도 저는 매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어요.
학창시절의 꿈은 무엇이었습니까?
어릴 땐 운동을 무척이나 좋아해 국가대표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나서 사업을 하고 싶었어요. 전 무엇을 하든 항상 제 맘속에는 무조건 성공할거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어요. 국가대표선수가 되든 사업을 하든 직장생활을 하든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희망만은 학창 시절이나 지금이나 저의 맘 한곳에 꺼지지 않고 있어요.
존경하고 닮고 싶은 롤모델이 있으신지요?
여러분들이 떠오릅니다. 사람이 성장하고 나이를 먹을수록 롤모델도 차츰 변하는 것 같아요. 우선 김우중 회장님의 성공에 대한 집념과 정주영 회장님의 창의력을 존경해요. 그리고 인재를 학벌이 아닌 능력으로 평가하신 금호그룹 박성룡 회장님의 인재경영방식을 본받고 싶은 부분이에요. 특히 박 회장님은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생산직 근로자인 저의 열정과 성심을 보시고 2계급 특진이란 전무후무한 인사 단행으로 제 능력을 활짝 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신 분이기도 해요. 나를 믿어주고 인정해주는 분들이 계셨기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재의 삶에 만족하십니까? 앞으로 어떤 꿈을 꿈꾸시고 계신지?
제 인생을 축구시합으로 본다면 전반전 밖에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아직 화려한 후반전도 있고, 연장전까지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더 크고 원대한 꿈과 야망, 목표를 향해서 끝없이 도전할 것이에요. 그것은 제가 사는 이유이기도 해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원 박사과정도 공부하고 있고 전문서적도 많이 읽고 있어요. 20~30대 젊은 친구들만큼 공부하고 노력하려고 해요. 앞으로는 녹색성장 신재생 에너지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고 사업을 구상 중이에요.
청소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떤 역경에도 뜻이 간절하면 길이 열려요. 성공은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저는 흑산도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몹시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어요. 얼굴엔 마른버짐이 그칠 날이 없을 정도였어요. 그 당시 아이큐가 139라서 나쁘지 않은 머리를 가진 줄은 알았지만 아버님이 거듭된 사업실패로 화병으로 쓰러지시는 바람에 학비는 고사하고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야만 했어요. 그러나 가난은 고난이라기보다는 어떻게든 헤쳐 나가야 할 장애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상황에서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반드시 성공할거예요. 성공하도록 주어진 환경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세상을 향해 꿈을 가지고 맘껏 도전해 보세요. 그럼 세상의 주인이 될 것이에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아직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이 비전과 도전을 가지고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학벌위주의 사회풍조가 만연하기 때문이에요. 그런 환경에서는 제2의 빌게이츠가 나올 수 없어요. 어느 한 분야에 특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학벌을 떠나 능력으로 존중받아야 해요. 어느 학교 나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잘하느냐가 중요한 사회 말이에요. 이웃 독일의 경우에는 마이스터란 제도가 있어 기능인들을 우대하기 때문에 세계적인 기술 인력들이 배출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한문으로 자기 이름을 못 쓴다고 하더라도 이 사람이 세계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기술만 있다면 일인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청년기업가편
"남과 다른 생각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다."
이시원(시원스쿨대표)
창업하게 된 계기?
시장에서 어떤 비즈니스를 시작하려면 가장먼저 해야 되는 것이 정말 수요가 많은 곳인가 라는 부분이에요. 사실 많은 분들이 영어를 공부하지만 기초가 없는 것들을 제가 많이 보게 됐어요 그래서 그 부분을 채워줄 수 있으면 이 비즈니스가 성공할 수 있겠다 싶어서 창업하게되었습니다.창업 준비 시 힘들었던 경험과 극복기? 한명을 처음에 뽑을 때 그 한 명이 참 안 뽑혔어요. 왜냐면 사장 혼자 있는 회사에 누가 오고 싶겠어요. 이제 회사를 키워가면서 사람들이 이제 점점 저희가 57명이 됐는데 그 인원들이 커가면서 복합스러운 그런 인간관계가 제일 힘든 것 같습니다. 상황상의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 상황을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서경민(바이미닷컴대표)
남다른 시작은 어디에서?
우선 사업에 대해서 아이디어를 내는 부분들은 책을 통해서 가장 많이 벤치마킹을 하는 것 같아요. 다른 기업이 했던 사례라든지 경영기법이라든지 다른 기업에서 겪었던 사례들 같은 것들을 책을 통해서 많이 접하게 되고 여러 방송이나 아니면 그런 경험들을 통해서 겪다 보면 이제 제가 거기에 반추해서 우리 기업에서는 어떤 사업 아이템을 가지고 어떤 전략을 쓸 수 있을지 그런 것들을 고민해 볼 수 있는 것 같고요. 또 저는 일찍 창업을 해서 사실은 선배 창업자 분들이 많이 도움을 주시는 편이에요. 그래서 그런 분들이 해주시는 말씀들이 사실 책에서 얻지 못하는 현장감 있는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노하우를 통해서 배우기도 하고 있습니다.
김용태(SOCIAL MC 대표)
소셜 MC는 어떤 회사?
소 셜 미디어에 관련된 부분으로 기업들의 일을 대행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상의 마케팅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온라인 상에서 현재 많이 사용되고 있는 채널들이 있습니다. 블로그나 트위터나 페이스북, 그리고 유투브 등 온라인 상에서 소통할 수 있는 채널들이 있는데요. 이런 채널들을 활용해서 기업들의 일을 대행하고 있습니다.창업 후 가장 힘들었던 기억과 극복은 어떻게?가장 어려운 부분이 사람에 대한 관리 부분인 것 같습니다. 회사의 방향과 동일하게 움직이고 뭉쳐 있고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게 지금 매달 겪는 어려움 인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제가 다른 사람 입장에서 보는 시도를 해보고 그게 한 번 두 번 했을 때 다시 안될 경우에는 외부, 내부에서 조언을 받기 보다는 외부에 이제 좀 나이 많으신 어른 분들에게서 조언을 받게 됩니다. 멘토라고 할 수 있는 이제 같은 업종에서 이런 경험을 30년 정도 해보신 분. 그래도 해결이 안 되는 경우가 사실 많죠. 그런 때에는 내부에 있는 구성원들에게도 조언을 받기도 합니다.
염지홍(패션디자인대표)
남들과 다른 아이디어 발상법?
만약 자기의 아이디어가 있으면 이런 것들을 한 번 더 상상을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어떤 아이디어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판매가 돼서 어떤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그럼 그 제품이 어떤 환경적 영향을 미칠 것인지 까지도 생각을 해봐야 하거든요. 그래서 고려를 해봐야 할 것들이 옛날보다 훨씬 더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그런걸 배우기 위해서는 너무나 쉬운 것들만 한다기보다 직접 사람을 만나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도 사람을 상대할 수 있는 일, 결국 사람 안에서 이런 아이디어들이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것과 함께 지식과 경험을 쌓는 것과 병행을 해야만 여러 가지 좋은 사업 기회도 열릴 것이라고 생각 하거든요. 그리고 뭐 사업기회를 얻기 위해서도 또 다른 새로운 사람들, 좋은 사람들을 만날 필요가 있는 것이고요. 그리고 그들과 또 새로운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열린 마음을 가진다면 청년 창업도 충분히 도전해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동헌(마이크임팩트 대표)
창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
제가 없던 걸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인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무언가를 보여줘야만 인지를 하기 때문에 그런 점이 힘들었죠. 제가 생각하고 꿈꾸는 모습을 전달하는 게 힘들었어요.초기 창업 자금과 현재 매출?처음에 시작할 때는 친구들끼리 같이 모여서 했기 때문에 프로젝트 비용이 든 것이었고 시작할 때는 사실 사무실도 무엇도 아무것도 없었어요. 돈도 들게 아무것도 없었고 커피숍에 모여서 시작을 했던 거죠. 사실 창업 자금은 법인 설립비용 정도, 주주 납입금 이 정도만 필요하지 나중에 그런 돈이 필요해서 돈이 없어서 못 만든다 이런 이야기 같은 경우는 사실 요즘 시대에는 잘 안 맞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매출 같은 경우에는 정확하게 밝히기는 어렵지만 지금 한 열 다섯 명에서 스무 명 정도의 친구들이 같이 일하고 있고, 뭐 이제 2010년 기준으로 봤을 때는 몇 십억 단위 이 정도로 매출을 많이 올리죠.
성공을 부르는 발상의 전환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기업가편
"이윤보다 공공의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들."
창의적 진로개발 : 직업창조와 앙터프레너십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진(진미석,손유미,허정희,김소연)
1. 강소영(사람사랑나눔학교 교장)
서울 미아동에 있는 아주 특별한 카페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발달장애 청소년입니다. 장애인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일터. 그 시작엔 아삭의 남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인터뷰]
우선 가장 힘들었던 건 사회에서 장애에 대한 편견, 선입견, 그리고 그 현장에 있는 부모들조차도 할 수 없고, 그냥 단순한 업무 이 정도만 하면 좋겠다는 한계성을 긋고 저희 쪽으로 온다는 것이 저희들은 가장 답답하고 많이 어려웠던 부분이고요.
사회적 기업가로서 뿌듯함을 느낄 때?
우리 친구들이 스스로 뭔가를 해서 자기네 스스로가 돈을 벌었다고 느껴서 기뻤을 때,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이 친구들에게 처음 급여를 줬을 때 이런 것들. 그리고 이 친구들에게 급여를 주고 또 그것에 대해서 쓸 수 있도록, 부모님에게 양말이라도 하나 사게끔 교육을 하고 그런 부분들 하나하고, 그 다음에 창업가게는 아니지만 졸업 후에 채용된 애들이 있거든요. 다른 데로 취업을 한 친구들이 밤늦게 떡볶이, 순대 사 들고 선생님 찾아올 때, 스승의 날 찾아올 때, 뭐 이럴 때 가장 보람스러운 것 같아요.
2. 강성태(공부의 신 대표)
대학생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저소득층 학생들의 공부를 돕는 21세기형 공부방 <공부의 신>
[인터뷰]
공부의 신 회사 소개?
멘토링을 진짜 대한민국 전국으로 확대시켜보자는 그런 꿈을 갖게 됐어요. 그런 꿈을 갖고 저희끼리 고민을 하다가 그 꿈을 이루어줄 수 잇는 가장 적합한 형태가 사회적 기업이라는 그런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지금 2008년 말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젊은 피, 강성태 대표가 만든 사회적 기업입니다
[인터뷰]
사회적 기업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
`인터넷 사이트 운영하는 공신닷컴을 제대로 운영을 하려면 기업의 형태를 가야 한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렇다고 저희가 어떤 처음에 취지나 추구했던 바가 일반적인 사교육 업체는 또 아니었거든요. `우리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형태가 사회적 기업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3. 노리단
문화예술 분야의 대표적인 사회적 기업 <노리단>
2004년 청소년 문화예술 창업프로젝트로 시작되었습니다
생태주의 공연부터 직업체험 놀이터 공공디자인 등 청년사업과 지역을 거점으로 한 커뮤니티 사업
[일본관람객 인터뷰]
노리단과 같이 고용하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은 아직 없기 때문에 노리단, 아니 한국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 박미현(터치포굿 대표)
현수막과 광고판... 쓰고나면 버려지는 물건들
쓰레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회적 기업, 터치 포굿
[인터뷰]
터치포굿 창업 계기?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서 관심도 가지고 있었고 토론을 한다든가 하는 활동들에 참여하고 있었는데요, `내가 하는 일들이 사회에 좀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 라는데 뜻을 모으게 돼서 창업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남다른 발상을 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환경문제에 관심 있는 친구가 있어서 뭔가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재료를 가지고 쓸모 있는 것들을 만들어 보자 까지 동의가 됐어요. 그러다가 주변을 살펴보게 됐는데 현수막이 너무 많은 거예요. 모두가 알고 있는 소재로 시작을 해보자 라고 해서 처음에 현수막을 선택을 했고요. 현수막 같은 경우는 워낙 재활용을 하는 곳도 많이 있었고 워낙 많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는데 두 번째 광고판을 찾아냈던 계기가 우연히 이렇게 만져보게 됐는데 굉장히 부들부들한 소재로 되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계기를 통해서 우리가 항상 지나다니던 건데 내가 진작 한 번 만져봤으면 더 일찍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녀가 있어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집니다
5. 변형석(트래블러스 대표)
환경을 생각하는 에코투어
<트래블러스맵>은 소비적인 여행이 아니라 공정한 여행, 지속 가능한 여행을 만들어가는 사회적 기업입니다.
[인터뷰]
창업 계기?
사회가 같이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살 수 있는 그런 세상들을 꿈꾸면서 살아왔던 게 있고요. `내가 돈을 버는 그 목적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식이면 좋겠다` 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최근에 사회적 기업이라는 게 어떤 경제 주체로 등장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저도 좀 거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고요.
사회적 기업가 정신의 중요 요소?
사회를 어떻게 바꿔나갈지에 대한 새로운 어떤 아이디어들이죠.. 그리고 이런 것이 좀 창의성인 것 같아요. 굉장히 좀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그리고 사회에 대한 민감한 시선들과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는 그런 부분이 아마 사회적 기업가의 중요한 덕목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한민국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회적 기업가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